- 박지온 역

- 성균관대 경제학부 졸, 반야심경 해설서 저자


4.

道沖而用之或不盈(도충이용지혹불영)
도는 비어 있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淵兮似萬物之宗(연혜사만물지종)
심연처럼 깊어 만물의 으뜸인 것처럼 보인다.

挫其銳(좌기예)
날카로운 것은 무디게 하고

解其紛(해기분)
얽힌 것은 풀어 주고

和其光(화기광)
밝음과는 화합하여

同其塵(동기진)
먼지조차 드러낸다.

湛兮似或存(담혜사혹존)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지만 바닥이 존재하는 듯하다.

吾不知誰之子(오불지수지자)
나는 그 근원을 알지는 못하지만,

象帝之先(상제지선)
다만 태초의 존재조차 생겨나게 하는 작용임은 분명하다.

 

 

 

5.

天地不仁(천지불인)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아

以萬物爲芻狗(이만물위추구)
만물에서 특별히 아끼는 대상이 따로 없다.

聖人不仁(성인불인)
성인도 인자하지 않아

以百姓爲芻狗(이백성위추구)
사람들을 가려서 편애하는 마음이 없다.

天地之間(천지지간)
천지 사이에서

其猶槖籥乎(기유탁약호)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와 같아서

虛而不屈(허이불굴)
비어 있으나 지치지 않고

動而愈出(동이유출)
움직일수록 더 많이 나온다.

多言數窮(다언삭궁)
말이 많으면 자꾸 궁해지니

不如守中(불여수중)
중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6.

谷神不死(곡신불사)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是謂玄牝(시위현빈)
이를 현빈이라 한다. 

玄牝之門(현빈지문)
현빈의 문은 

是謂天地根(시위천지근)
만물이 창조되는 근원이다.

綿綿若存(면면약존)
끊임없이 이어져 존재하는 듯하며

用之不勤(용지불근)
아무리 사용해도 다함이 없다.

 

4.

도는 비어 있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심연처럼 깊어 만물의 으뜸인 것처럼 보인다.
날카로운 것은 무디게 하고
얽힌 것은 풀어 주고
밝음과는 화합하여
먼지조차 드러낸다.
그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지만 바닥이 존재하는 듯하다.
나는 그 근원을 알지는 못하지만,
다만 태초의 존재조차 생겨나게 하는 작용임은 분명하다.

 

 

5.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아
만물에서 특별히 아끼는 대상이 따로 없다.
성인도 인자하지 않아
사람들을 가려서 편애하는 마음이 없다.
천지 사이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나 지치지 않고
움직일수록 더 많이 나온다.
말이 많으면 자꾸 궁해지니
중심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6.

'골짜기의 신은 죽지 않으니, 
이를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만물이 창조되는 근원이다.
끊임없이 이어져 존재하는 듯하며
아무리 사용해도 다함이 없다.

 


(* 본 글은 추후 출간될 도덕경 해설서 출판을 위한 사전 번역자료입니다.

기존 도덕경 번역과는 많이 다를 수 있으며

추상화된 신비주의보다는 현실적 실용성에 의거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삶에서 자신의 어리석음,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여

평온하고 화합하는 삶을 살아가시는데 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sam/E000007108905

 

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 | 박지온 | 작가와- 교보ebook sam

비전이 있을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책소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다양

ebook-product.kyobobook.co.kr

 

'도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덕경 16장~18장 해석  (0) 2024.01.19
도덕경 13장~15장 해석  (1) 2024.01.06
도덕경 10장~12장 해석  (2) 2024.01.04
도덕경 7장~9장 해석  (1) 2024.01.02
도덕경 1장~3장 해석  (0) 2024.01.01

- 박지온 역

- 성균관대 경제학부 졸, 반야심경 해설서 저자


1.

道可道非常道(도가도비상도)
도를 도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이름이 도 그 자체는 아니다.

名可名非常名(명가명비상명)
대상을 이름지어 부른다 하더라도 이름이 대상 그 자체는 아니다.

無名天地之始(무명천지지시)
대상의 실체는 이름을 붙이기 이전에도 존재하니

有名萬物之母(유명만물지모)
이름은 대상을 가리키는 도구일 뿐이다.

故常無欲以觀其妙(고상무욕이관기묘)
따라서 이름 자체에 집착하지 않아야 대상의 실체가 보이고

常有欲以觀其徼(상유욕이관기요)
이름을 통해서는 실체의 겉모습을 인지한다.

此兩者同出而異名(차양자동출이이명)
실체와 이름은 결국 실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

同謂之玄(동위지현)
이처럼 실체 그 자체를 보는 사고를 심오한 지혜라고 한다.

玄之又玄(현지우현)
심오하고 심오해서

衆妙之門(중묘지문)
이것이 모든 진리의 시작이다.

 

 

2.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가리키는 까닭은

斯惡已(사오이)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皆知善之爲善(개지선지위선)
사람들이 선함을 선함이라고 가리키는 것은

斯不善已(사불선이)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故有無相生(고유무상생)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며

難易相成(난이상성)
쉽고 어려움 역시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다.

長短相較(장단상교)
길고 짧음은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며

高下相傾(고하상경)
높고 낮음 역시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다.

音聲相和(음성상화)
악기와 목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前後相隨(전후상수)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是以聖人處無爲之事(시이성인처무위지사)
그러므로 성인은 조화를 이루어 일을 행하며

行不言之敎(행불언지교)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萬物作焉而不辭(만물작언이불사)
일을 이루어 내고도 자랑하지 않고

生而不有(생이불유)
결실이 생겨도 소유하지 않는다.

爲而不恃(위이불시)
행하되 의지하지 않고

功成而弗居(공성이불거)
공이 이루어져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夫唯弗居(부유불거)
머무르지 않기에

是以不去(시이불거)
물러날 일도 없다.

 

 

不尙賢(불상현)
성인의 지혜를 숭상하지 않으면

使民不爭(사민불쟁)
사람들이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다투지도 않는다.

不貴難得之貨(불귀난득지화)
귀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使民不爲盜(사민불위도)
사람들이 도둑질하지 않는다.

不見可欲(불견가욕)
욕심낼 만한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使民心不亂(사민심불란)
사람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 않는다.

是以聖人之治(시이성인지치)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虛其心(허기심)
마음을 비우고

實其腹(실기복)
배를 채우며

弱其志(약기지)
욕망을 약하게 하고

強其骨(강기골)
몸을 튼튼하게 한다.

常使民無知無欲(상사민무지무욕)
항상 백성들이 지식과 욕망이 없게 하며

使夫智者不敢爲也(사부지자불감위야)
지식인들이 감히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

爲無爲則無不治(위무위칙무불치)
무위로써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1.

도를 도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이름이 도 그 자체는 아니다.
대상을 이름지어 부른다 하더라도 이름이 대상 그 자체는 아니다.
대상의 실체는 이름을 붙이기 이전에도 존재하니
이름은 대상을 가리키는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름 자체에 집착하지 않아야 대상의 실체가 보이고
이름을 통해서는 실체의 겉모습을 인지한다.
실체와 이름은 결국 실체의 다른 이름일 뿐이니
이처럼 실체 그 자체를 보는 사고를 심오한 지혜라고 한다.
심오하고 심오해서
이것이 모든 진리의 시작이다.

 

 

2.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가리키는 까닭은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추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선함을 선함이라고 가리키는 것은
그것과 비교할 수 있는 악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며
쉽고 어려움 역시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길고 짧음은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며
높고 낮음 역시 비교되어서 알게 되는 것이다.
악기와 목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그러므로 성인은 조화를 이루어 일을 행하며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일을 이루어 내고도 자랑하지 않고
결실이 생겨도 소유하지 않는다.
행하되 의지하지 않고
공이 이루어져도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머무르지 않기에
물러날 일도 없다.

성인의 지혜를 숭상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이 더 지혜롭다고 다투지도 않는다.
귀하고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사람들이 도둑질하지 않는다.
욕심낼 만한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마음을 비우고
배를 채우며
욕망을 약하게 하고
몸을 튼튼하게 한다.
항상 백성들이 지식과 욕망이 없게 하며
지식인들이 감히 다스리지 못하게 한다.
무위로써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 본 글은 추후 출간될 도덕경 해설서 출판을 위한 사전 번역자료입니다.

기존 도덕경 번역과는 많이 다를 수 있으며

추상화된 신비주의보다는 현실적 실용성에 의거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삶에서 자신의 어리석음,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여

평온하고 화합하는 삶을 살아가시는데 큰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sam/E000007108905

 

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 | 박지온 | 작가와- 교보ebook sam

비전이 있을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책소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다양

ebook-product.kyobobook.co.kr

 

 

'도덕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덕경 16장~18장 해석  (0) 2024.01.19
도덕경 13장~15장 해석  (1) 2024.01.06
도덕경 10장~12장 해석  (2) 2024.01.04
도덕경 7장~9장 해석  (1) 2024.01.02
도덕경 4장~6장 해석  (1) 2024.01.01

https://youtu.be/D07Q2k04uCU?si=_b6wH9JSCA8TIMKy

 

내 삶의 운명이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고, 혹은 바꿀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이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운명을 개척하고, 바꾸고, 정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바로 나 자신 뿐입니다.

 

Destiny와 Fate 의미 차이
- Destiny : 나의 행위에 의해 나의 미래가 결정되어지는 운명
- Fate : 나의 행위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숙명)

 

 

만약 위의 두 운명 중 Fate를 믿는 이라면

그는 삶에서 정해진 운명이 이미 있기에 내가 나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도 없고

아무리 나쁜 죄를 저지르더라도 자신의 죄의 원인을 전생의 업 탓으로 돌리며 자기를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 계급사회를 합리화하는 핵심 교리가 이 Fate 이기도 합니다.

너가 지금 노예로 살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 나쁜 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죄의식을 심어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Fate는 실체하지 않는다라는 자기 확신을 가진 이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이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서 근심, 걱정의 초점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전망입니다.

 

'과거에 이런 결정을 내렸으면 지금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걸...'

이런 생각이 과거에 대한 후회가 되는 것이고,

'내가 그동안 좋은 과보를 많이 쌓았으니 내년에는 좋은 일이 많이 있어야 할텐데...'

이런 생각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고의 초점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 현재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가 미래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고,

미래의 삶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뜻있는 행동을 하는 이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 근심, 걱정을 하면서

귀중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허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경험은 단지 지금 나의 행위를 더욱 뜻깊게 하는 지혜의 배경지식이 될 뿐입니다.

 

뜻있고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위한 생각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해보고

그러한 예측된 결과들 중 나와 주변, 자타의 이익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일에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를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결과에 대해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확한 예측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관련 분야 에 대한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이런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물어보면 훨씬 좋습니다.

어떤 분야이든지 이미 경험을 하고 그것에 대한 체득된 데이터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견해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운명은 이처럼 지금 여기 나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결정되는 것일 뿐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다만 과거의 다양한 경험, 주변 믿을 수 있는 전문가의 견해 등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이러한 기본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의 보다 먼 미래 즉 죽음의 문제와

거기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어떤 행위와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지요.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버리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한다.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 없는
그것을 지혜 있는 자 증장시킬지라.
오늘 정진하라. 내가 죽을지 누가 알리오?
죽음의 무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라.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면
지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고요한 성자라 하리."

- 초기불전연구원 M133, 마하깟짜나 존자와 지복한 하룻밤 경 중 -

(法은 쓰임에 따라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여기에 쓰인 법은

소문자 darma로서 마음에 드러난 일체 경계를 의미합니다.

반면 대문자 Darma는 부처님 가르침의 원리 즉 사유법을 말하며

연기법, 사성제법, 삼법인 등의 법은 Darma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더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의 관계에 대한

살핌을 가져가는 이에게 정해진 운명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예언에 혹하여 그것에 대해 마음 깊숙히 믿고 상상하며

그러한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 삶을 운명에 맡기는 마음 자세로 살아간다면

삶은 그러한 예언과 비슷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그에 합당한 노력을 믿는 이에게

정해진 운명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의 주술, 예언 이런 것에 대해 신뢰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해 예측해보고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마음의 끌림이 있을 때

그것을 행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재단하고 살펴보기 위함일 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행하여 미래에 그 결실을 받을지 회피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결정할 일일 뿐이지, 나의 미래를 결정할 그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스스로의 탐, 진, 치에 이끌려

자기 자신의 바로 앞 운명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들이

남들을 현혹하기 위해 하는 어리석은 주장에 대해

혹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하고

바른 이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천축으로 부터 중국에 온 육관대사라는 고승의 수제자 성진스님은 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가다가 길에서 만난 팔선녀에 마음을 빼앗겨 지옥에 떨어지고, 양소유라는 인물로 세상에 환생합니다. 양소유는 세상의 온갖 성취를 이루어서 승상의 벼슬에 오르고, 아름다운 2명의 부인과 6명의 첩을 거느리게 됩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노년이 된 양소유는 어느날 문득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한 노승을 만나 불도에 귀의할 것을 말합니다. 이에 노승이 난간을 두드리자 그간의 모든 일들은 꿈처럼 사라지고 까칠까칠한 중의 머리를 한 성진스님 자신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중략)

인위적인 일체의 법은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꿈과 환상 같고,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 소설 구운몽 중, 김만중 저, 송성욱 역, 민음사 참고

 

 

 

<반야심경 해설서>, 박지온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06023

'비젼과 마음챙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 소망, 사랑  (1) 2024.01.25
화두의 의미  (0) 2024.01.17
감사하는 마음이 가져오는 인간관계의 변화  (0) 2023.11.27
불교)'무상'과 '무아'의 의미  (0) 2023.11.12
논쟁에서 대화로  (0) 2023.11.04

오늘 하루는 누구누구의 도움이 없었으면 참 힘든 하루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대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생겨나게 하며,
이로 인해 자족하고 삶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생겨나게 합니다.

반면 오늘은 누구 때문에 힘들었고, 누구보다는 내가 나았으니 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며 상대를 비하하는 마음을 생겨나게 하고,
이로 인해 자신을 우월시하는 동시에 상대의 마음에 아픔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사소한 차이가 장기적으로 인간관계에서 큰 변화와 차이를 가져옵니다.
즉 자신의 불만족과 부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그것의 원인을 주변의 탓으로 돌리게 되면

인간관계는 점점 고립되어 가는 반면,
자신의 행복과 긍적적인 면을 바라보고 그것의 원인을 주변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돌리게되면

인간관계는 점점 원활해지고 따뜻해지게 됩니다.

상대에 대해 늘 감사하고 스스로 따뜻한 이웃과 친구가 되려는 마음은
주변사람들 역시 나에게 그렇게 다가오게 하는 따뜻하고 정겨운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상대와 부정적으로 보거나 비하하려는 마음은
상대 역시 나에게 부정적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의 여기 내가 있기까지 나를 길러주고 이끌어준 이들 모두가 내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 중에서도 가장 감사하고 소중히 해야 할 사람은 힘겨운 일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의 우월감으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한없이 불만스럽고 부족해 보이는 사람들이
내가 바르게 살아있고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준 너무나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일 때
저 멀고 높은 세상에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닌, 눈앞의 세상과 이웃에 감사하고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자비경>

- 참고 : https://whoami555.tistory.com/13742891

올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들은
계정혜를 닦고,
올바르고, 정직하고, 고요하고, 온유하고,
겸허해야 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분주하지 않으며,
검소한 생활과 고요한 감관,
신중한 태도와 겸손함을 가지며
가까운 이들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현명한 이들에게 비난을 받을 만한
사소한 허물도 일삼지 않는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살아있는 생명이면 예외가 없이
약하든지 강하든지, 미세하든 거대하든
길든지 짧든지, 중간이든 키가 크든


눈으로 볼 수 있든, 눈으로 볼 수 없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태어났든, 태어나려 하든
이 세상 모든 이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곁에 있든 멀리 있든
속이거나 멸시하지 않아야 하며,
원한의 마음으로 몸으로 입으로
고통 주고 싶어 하지 않아야 한다.


어머니가 오직 하나뿐인 자식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보호하듯
지극한 자애를 베풀어야 한다.
  

온 세상의 위로, 아래로, 옆으로
끝없이 모두를 살피는 마음을
자애의 마음을 펼쳐야 한다.
원한과 적의를 소멸시킨 자비를.


서거나 걷거나 앉아있건 누워있건
깨어있는 동안에는 언제 어디서나
자애의 마음을 닦아가는 생활을
‘고귀한 삶’이라 부처님 설하셨다.


계정혜를 지니는 수행자는
잘못된 견해에 매이지 않으며
감각적 욕망을 다스릴 수 있기에
다시는 갈애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는다.

 

자애경(Snp1.8) 번역 8종류 비교

2023년 16일 목요일 오후 9시에는 자애경을 주제로 공부합니다. 먼붓다에대한 예경과 삼귀의를 하고나서 토론공부를 시작합니다. 토론 순서 1.경전 합송 2. 오자,탈자,문맥상 부자연스러운 곳 점검

whoami555.tistory.com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8815159

 

[전자책]반야심경 해설서 - 예스24

수행은 홀로 가는 길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삶에 대한 길이고, 스스로 밝혀야 할 길입니다.특히 부처님 가르침은 나 자신의 내면을 있는그대로 보는 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반야심경은 이러

www.yes24.com

 

'비젼과 마음챙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두의 의미  (0) 2024.01.17
정해진 운명이 없는 이유  (0) 2023.12.25
불교)'무상'과 '무아'의 의미  (0) 2023.11.12
논쟁에서 대화로  (0) 2023.11.04
자기관리 체크리스트  (1) 2023.08.21

https://www.youtube.com/watch?v=V8A4qudmsX0

 

부처님 가르침에서 무상이란 항상하지 않다라는 의미로 무아의 의미와 직결되는 핵심용어입니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조건지어진 의미를 파악하는 것으로 부터 부처님 가르침은 시작되며,

이것을 아는 것이 곧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무상, 고, 무아를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합니다.

 

제가 처음 불교의 무상을 배울 때,

저는 그것을 저의 인식이 대상을 알아차림(식, 윈냐냐 vinnana)하는 과정과 연계시키지 못하고,

단지 관념적인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화한다는 의미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파악하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은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추구하게 되는 모든 것들도 언젠가는 변화하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의도적인 노력과 추구가 무용지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인과법(원인이 있으므로 결과도 있다)에도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이해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에서는 수행의 결실인 깨달음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게 되는 그런 것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가르침을 그러한 관점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즉 시간적, 물리적 관점이 아니라 인식론의 관점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무상은 인간이 대상을 알아차리는 인식이 변화하는 것의 연속성 속에서

그것의 변함없는 본질(존재, 我, 푸드갈라, 아트만, 브라만 등)이 있다고 착각하는 인식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인식의 대상으로 드러나는 것들 중 나로 삼게 되는 오온(색, 수, 상, 행, 식)에 대해서

그것이 변화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무상)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음을 다시 알아차리는 것(무아)이 곧 깨달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상과 무아는 깨달음에 대해

전자는 변화한다는 것에, 후자는 변화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존재는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깨달음의 다른 특성을 드러내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만약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변화하는데 왜 존재가 없다고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위 애니메이션에 대한 영상을 다시 한번 보고 이 글을 다시 읽으시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위의 애니메이션을 보시면 캐릭터의 이미지 하나하나가 모여 마치 실제로 살아있는 것 같은 캐릭터가 만들어집니다.

인간은 단순한 이미지들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상상속에서 그러한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처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무상)속에서 존재한다고 착각(무아)하는 것을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무명(無明)이라고 합니다.

즉 무명이란 무상과, 무아에 대한 무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 착각(무명)이 현실에 의해 깨어지는 순간 큰 괴로움(苦)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자각에서 오는 괴로움을 현실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인식의 착각이라는 문제로 돌리게 되면 그것이 곧 수행의 시작이자, 깨달음의 시작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사성제법에서 고성제법이 가장 우선 나오게 되며

고성제를 알면 곧 사성제법을 알게 된다고 부처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

3. “도반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도 봅니까?”

4. 이렇게 말하자 가왐빠띠 존자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저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듣고 세존의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을 본 사람은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일어남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도 본다. 비구들이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본 사람은 괴로움도 보고 괴로움의 일어남도 보고 괴로움의 소멸도 본다.’라고.”

----------

 

- 가왐빠띠 경(S56:30), 상윳따니까야, 초기불전연구원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8815159

 

[전자책]반야심경 해설서 - 예스24

수행은 홀로 가는 길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삶에 대한 길이고, 스스로 밝혀야 할 길입니다.특히 부처님 가르침은 나 자신의 내면을 있는그대로 보는 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반야심경은 이러

www.yes24.com

 

https://www.youtube.com/watch?v=PkLEAdUFXZo

 

주어진 여건대로, 경제적 형편에 따라, 주변 사람들이 요구하는대로 살아가다보면,

삶은 그냥 주어진대로 아쉬운 세월만 흘러가게 됩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늘 꿈꾸고 마음속에서 잊지 않고 살아야

자신의 목표를 잃지 않고, 헛된 길을 가지 않게 됩니다.

내가 내 꿈을 상상하고 간직하는 것을 방해할 이는 아무도 없으며,

또한 나 말고 나 자신의 꿈과 행복을 실현시켜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노력하게 되면

그에 필요한 환경이 서서히 조성되며,

오히려 주변에서 그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8815159

 

[전자책]반야심경 해설서 - 예스24

수행은 홀로 가는 길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삶에 대한 길이고, 스스로 밝혀야 할 길입니다.특히 부처님 가르침은 나 자신의 내면을 있는그대로 보는 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반야심경은 이러

www.yes24.com

 

<논쟁에서 대화로>

어떤 내용을 주제로 하는 논쟁이든 논쟁은 그것을 이긴 사람에게는 자신의 합리성에 대한 자부심을, 진 사람에게는 자신의 불합리성에 대한 상처를 입힙니다.
만약 논쟁의 참가자 모두가 그 논쟁을 통해 참된 진실을 얻고자 한다면 논쟁이 끝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순간 두 사람은 모두 치열한 논쟁을 통해 얻어진 결론에 대해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들간의 논쟁 혹은 참된 배움을 얻으려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논쟁에서 이러한 현상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논쟁의 과정 속에 나 자신의 우월성이라는 관념이 끼어들게 되면, 논쟁에서 진 사람은 자존심에 타격을 입게 되고, 이로 인해 논쟁의 참가자인 상대방과의 관계는 급속히 냉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의 입장,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는 논쟁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적들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기 때문에  최대한 자제가 필요하며 나와 상대방에 아무런 이익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의 논쟁의 목적은 논쟁의 과정을 통해 나에게 필요하고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고 상대에게도 이를 수긍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논쟁의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논거가 부족함이 발견되면 즉시 이를 인정하고 논의의 흐름을 그에 맞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쟁의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상대에 대한 비방이나 나 자신이 타인보다 우월함을 고취시키는 행위는 결과적으로 나와 상대의 관계가 악화되는 손실만을 낳게 합니다.
또한 상대가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면 굳이 내가 그에게 내가 생각하는 진실에 대해 알리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상대와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상대가 나에게 우호적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견해와 생각을 피력하는 논쟁을 피하고
일상 생활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통해 서로가 즐겁고 좋은 느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누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1. 정리 :

 

a, b (a>b, ab는 양의 정수)의 최대공약수가 G라고 한다면,

 

bab로 나눈 나머지 r(0 <= r <b) 역시 최대공약수를 G로 가진다.

 

 

 

2. 증명 :

 

ab의 최대공약수를 G라 한다면, a = mG, b=nG 이고, m, n은 서로소(1을 제외한 공약수 없음)인 양의 정수이다.

 

ab로 나눈 나머지를 r이라고 할 때 a = bq + r 이 성립하는 유일한 정수 q가 존재한다.

 

위 식 a = bq + r a = mG, b=nG를 각각 대입하면 mG = nGq + r이고, r= G(m-nq)이다.

 

b=nG 이므로 br의 최대공약수가 G가 되려면 nm-nq가 서로소가 되어야 한다.

 

 

아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귀류법을 알아야 합니다.

(* 귀류법 : 부정하려는 명제가 맞다고 가정했을 때 생기는 모순을 통해 그 명제를 부정하는 방법)

 

 

만약 nm-nq에 공약수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n= Lk, m-nq = Lk’(k, k’는 서로소인 양의 정수)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n = Lk 이고 m = nq + Lk’ = Lkq + Lk’ = L(kq + k’)이므로

 

이는 nm이 서로소라는 가정에 모순되게 된다.

 

 

따라서 앞에서 nm-nq에 공약수가 존재한다는 가정이 부정되게 되므로,

 

nm-nq는 서로소이고

 

따라서 br의 최대공약수는 G가 된다.

 

 

 

(증명 끝)

 

 

'수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칼라와 벡터 그리고 위상수학  (0) 2025.01.09
베이즈 정리 의미  (1) 2024.12.13
리만 가설 이해하기  (2) 2024.11.19
수학 공부법  (1) 2024.01.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