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 華頭)란 곧 신, 구, 의 즉 자신의 행위의 시작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작이라는 것은 곧 끝과 맞물려 있는 상대적 개념이기에
시작을 알려면 끝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행위의 끝은 무엇일까요?
행위의 끝이란 행위의 결과를 말합니다.
그리고 행위의 결과란 그 시점에 따라 두가지로 나누어질수 있겠지요.
하나는 이미 일어난 행위의 결과, 즉 과거나 현재의 결과이고
둘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행위의 결과, 즉 미래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과거이든, 미래이든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자타에 이익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피는 것이 곧
37조도품( 三十七道品) 중 하나인 사정근(四正勤)입니다.
- 아직 생기지 않은 惡은 생기지 않토록 하고
- 이미 생긴 惡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토록 하며
- 아직 생기지 않은 善은 생겨나도록 하고
- 이미 생긴 善은 더욱 증장함
화두란, 이처럼 사정근의 사유를 통해 행위의 결과를 보고
이어서 그 시작점이 되는 생각을 되비추어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 하지요.
행위의 결과는 그것이 일어났든지, 아직 일어나지 않았든지 곁가지일 뿐이고,
그 행위의 시작이 되는 생각의 뿌리 혹은 계기를 잡아내는 것이
곧 수행의 핵심인 화두 수행입니다.
그 시작점에 대해서는 이미 경전에 정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답을 지식으로 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보고,
그러한 행위가 생겨나게 되는 시작점(뿌리, 조건, 계기, 연기 등)을 보는 훈련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조사선으로 유명한 마조도일과 그 제자인 석공혜장이 처음 만났을 때 일화입니다.
석공 혜장(石鞏慧藏)스님은 출가 전에
본래 사냥을 일삼았으며 사문을 싫어하였습니다.
한번은 사슴떼를 쫏다가 마침 스님의 암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스님이 그를 맞이하자 그는 물었습니다.
석공 "스님은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지요?"
마조 "그대는 무얼하는 사람이냐?"
석공 "사냥꾼입니다."
마조 "활을 쏠 줄 아는가?"
석공 "쏠 줄 압니다."
마조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를 잡는냐?"
석공 "한 발로 한 마리를 잡습니다."
마조 "활을 쏠 줄 모르는구나."
석공 "스님께선 활을 쏠 줄 아십니까?"
마조 "쏠 줄 알지."
석공 "스님께서는 화살 한 발로 몇 마리나 잡으십니까?"
마조 "한 발로 한 떼를 다 잡는다네."
석공 "저놈들도 생명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 떼나 잡겠습니까?"
마조 "그대가 그런 줄 안다면 왜 스스로를 쏘지 않느냐?"
석공 "저더러 스스로 쏘라 하신다면 쏘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호통을 치셨다.
마조 "이놈! 광겁의 무명번뇌를 오늘 단박 쉬도록 하라."
- https://bluecloudhan.tistory.com/94 마조도일 선사어록 참고
이 때 한 화살로 떼거리를 잡는다는 것의 의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범부들의 어리석음을 바른 가르침으로 한꺼번에 잡아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두번째로 모든 번뇌의 시작이 되는 어리석은 생각의 원천을 한방에 잡아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석공은 대상은 쏠 수 있어도
그 대상의 원천인 자기자신을 쏘는 것은 불가능한게 아니냐며 되묻습니다.
자기자신을 어떻게 쏠 수 있을까요?
이것이 곧 회광반조이며 연기의 사유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즉 행위의 결과를 보고 그 결과의 시작이 되는 원인과 조건을 보는 것이
곧 연기의 사유이며, 나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입니다.
결과를 보고 인정하는 것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의 원인을 되돌아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온갖 자기합리화와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행위가 생겨나는 조건들을
외부로 돌리지 않고 내 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무명번뇌를 쉬게 되는 것입니다.
“도반이여, 그렇다고 나는 그런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도
괴로움의 끝을 성취하는 것을 말하지도 않는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천명하노라.
- 상윳따니까야(s2:26), 초기불전연구원 중 -
완벽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논하는 분들에게
수행이란 어쩌면 이기적이고 자기자신밖에 모르는 사람들의
회피적 삶으로 비추어질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전쟁이 끝나고 갈등이 종식되어
일체의 문제가 해결된 평화로운 세상이 도래하더라도
만약 나 자신의 이상향은 더 높은 곳에 기준을 삼고 있다면
나의 마음은 여전히 불만족한 상태일 것입니다.
즉 세상에 대한 온갖 불만이 시작되는 원천인
완벽한 세상인 이상향을 꿈꾸고 있는
바로 그 나 자신의 마음이 일어나는 조건을 잡아낼 때
세상에 의지하지 않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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