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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젼과 마음챙김

정해진 운명이 없는 이유

by 지혜 명상 2023. 12. 25.

https://youtu.be/D07Q2k04uCU?si=_b6wH9JSCA8TIMKy

 

내 삶의 운명이 정해져 있고,

그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고, 혹은 바꿀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이는 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운명을 개척하고, 바꾸고, 정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한 사람

바로 나 자신 뿐입니다.

 

Destiny와 Fate 의미 차이
- Destiny : 나의 행위에 의해 나의 미래가 결정되어지는 운명
- Fate : 나의 행위와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운명(숙명)

 

 

만약 위의 두 운명 중 Fate를 믿는 이라면

그는 삶에서 정해진 운명이 이미 있기에 내가 나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도 없고

아무리 나쁜 죄를 저지르더라도 자신의 죄의 원인을 전생의 업 탓으로 돌리며 자기를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 계급사회를 합리화하는 핵심 교리가 이 Fate 이기도 합니다.

너가 지금 노예로 살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 나쁜 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죄의식을 심어주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Fate는 실체하지 않는다라는 자기 확신을 가진 이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습니다.

 

삶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느냐이지만,

정작 우리의 삶에서 근심, 걱정의 초점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전망입니다.

 

'과거에 이런 결정을 내렸으면 지금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걸...'

이런 생각이 과거에 대한 후회가 되는 것이고,

'내가 그동안 좋은 과보를 많이 쌓았으니 내년에는 좋은 일이 많이 있어야 할텐데...'

이런 생각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고의 초점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현재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 현재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가 미래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고,

미래의 삶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뜻있는 행동을 하는 이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 근심, 걱정을 하면서

귀중한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허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경험은 단지 지금 나의 행위를 더욱 뜻깊게 하는 지혜의 배경지식이 될 뿐입니다.

 

뜻있고 의미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위한 생각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의 행동이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해보고

그러한 예측된 결과들 중 나와 주변, 자타의 이익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는 일에

자신의 정신적 에너지를 집중하여야 합니다.

 

그러한 결과에 대해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정확한 예측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관련 분야 에 대한 경험이 많은 이들에게

이런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물어보면 훨씬 좋습니다.

어떤 분야이든지 이미 경험을 하고 그것에 대한 체득된 데이터와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견해를 소중히 해야 합니다.

 

운명은 이처럼 지금 여기 나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결정되는 것일 뿐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다만 과거의 다양한 경험, 주변 믿을 수 있는 전문가의 견해 등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뿐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이러한 기본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내 삶의 보다 먼 미래 즉 죽음의 문제와

거기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서 어떤 행위와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지요.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미래를 버리지 마라
과거는 떠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들(*法)을 바로 거기서 통찰한다.
정복당할 수 없고 흔들림 없는
그것을 지혜 있는 자 증장시킬지라.
오늘 정진하라. 내가 죽을지 누가 알리오?
죽음의 무리와 더불어 타협하지 말라.
이렇게 노력하여 밤낮으로 성성하게 머물면
지복한 하룻밤을 보내는 고요한 성자라 하리."

- 초기불전연구원 M133, 마하깟짜나 존자와 지복한 하룻밤 경 중 -

(法은 쓰임에 따라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여기에 쓰인 법은

소문자 darma로서 마음에 드러난 일체 경계를 의미합니다.

반면 대문자 Darma는 부처님 가르침의 원리 즉 사유법을 말하며

연기법, 사성제법, 삼법인 등의 법은 Darma로 표현합니다.)

 

이처럼 더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여기에서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의 관계에 대한

살핌을 가져가는 이에게 정해진 운명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의 예언에 혹하여 그것에 대해 마음 깊숙히 믿고 상상하며

그러한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 듯 삶을 운명에 맡기는 마음 자세로 살아간다면

삶은 그러한 예언과 비슷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그에 합당한 노력을 믿는 이에게

정해진 운명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의 주술, 예언 이런 것에 대해 신뢰하지 않습니다.

미래에 대해 예측해보고 시뮬레이션해보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마음의 끌림이 있을 때

그것을 행하는 것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를 재단하고 살펴보기 위함일 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그것을 행하여 미래에 그 결실을 받을지 회피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결정할 일일 뿐이지, 나의 미래를 결정할 그 누구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이들은 스스로의 탐, 진, 치에 이끌려

자기 자신의 바로 앞 운명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이들이

남들을 현혹하기 위해 하는 어리석은 주장에 대해

혹하는 어리석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표하고

바른 이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뿐입니다.

 

천축으로 부터 중국에 온 육관대사라는 고승의 수제자 성진스님은 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가다가 길에서 만난 팔선녀에 마음을 빼앗겨 지옥에 떨어지고, 양소유라는 인물로 세상에 환생합니다. 양소유는 세상의 온갖 성취를 이루어서 승상의 벼슬에 오르고, 아름다운 2명의 부인과 6명의 첩을 거느리게 됩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노년이 된 양소유는 어느날 문득 삶의 무상함을 느끼고 한 노승을 만나 불도에 귀의할 것을 말합니다. 이에 노승이 난간을 두드리자 그간의 모든 일들은 꿈처럼 사라지고 까칠까칠한 중의 머리를 한 성진스님 자신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중략)

인위적인 일체의 법은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꿈과 환상 같고, 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如露亦如電 여로역여전)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 소설 구운몽 중, 김만중 저, 송성욱 역, 민음사 참고

 

 

 

<반야심경 해설서>, 박지온 - 밀리의 서재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60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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