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요?
우리가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동일성을 가진 나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신분상으로는 주민등록증이라거나 지문, 유전자, 집주소, 폰번호, 가족관계 등 나를 특정지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나라고,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겉으로 드러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상 변하는 사회적 관계, 이 몸과 그리고 마음 가운데서 변치않는 나만의 그 무엇을 우리는 정체성이라고 하는거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 정체성을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특정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남들에게 보이는 나가 아닌, 내가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특정할 수 있는 나를 찾을 수 있는지요?
왜냐하면 그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는 지금은 없습니다.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금 여기 현재의 나는 계속 과거로 사라져 갑니다.
시시각각 몸도 마음도 변하고, 사회적 관계는 더더욱이나 심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를 있는그대로 바라봐줄 사람은 남이 아닌 나 뿐입니다.
굳이 변함없는 나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미래의 꿈(비전)으로서의 나일 것입니다.
미래의 꿈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저 북극성이 지금 나의 위치는 아니지만, 내가 가는 길의 나침반이 되어줄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전은 나에게 삶의 동기를 제공하고, 나의 과거와 미래, 현재를 잇는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가 아니라는 비전의 특성으로 인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비전은 항상 갭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삶의 에너지이자, 동기가 될 수 있는 반면
불만족이자, 나를 혹사시키는 원인이 될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미래 비전과 별개로 지금 여기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지금 여기의 나는 텅비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석가는 공 혹은 무아라 말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비전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세상일에서는 한가했고
그러했기에 현실의 허망함과 모순을 있는그대로 깨달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도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미래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절대로 지금 여기의 텅빔, 공허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설사 문득 문득 들어서는 그 생각 역시 오히려 삶에 대한 안이함, 게으름으로 여기며
생각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이상을 추구하는 우리들 범부의 삶입니다.
어느날 문득 나라고 상정하던 자기만의 정체성이 깨어지는 현실을 마주하면
그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엄청난 괴로움과 자기모순에 부딪힐 뿐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찾아헤매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착각입니다.
그것이 과거의 나이든, 미래의 나이든, 현재의 나이든 말입니다.
그나마 현실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사회적으로는 칭송받을지라도
지금 나의 불만족, 불안함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이를 지혜로운 이들은 다람쥐 챗바퀴 도는 삶, 즉 윤회라고 말합니다.
다음 생, 저 세상이 있어서 윤회라고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람쥐가 챗바퀴도는 것을 어리석다고 알수는 있어도
자기 스스로의 챗바퀴같은 삶을 알아차리기는 참 힘든 것이지요.
그렇다면 미래에 의지하지 않고 텅빈 현실에 마주칠 때 다시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처럼 사유하는 지혜입니다.
나 자신은 그 무엇도 아니지만, 과거의 나, 미래의 나, 지금의 나 모두를 하나하나 사유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텅 비어있음을 있는 그대로 앎에서 나오는 그 무엇에도 묶이지 않는 지혜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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