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대한 수용과 주변 환경과 상황 파악을 먼저 하고,

그것을 토대로 내가 중시하는 가치를 토대로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야 함.

 

만약 대상에 대한 수용과 주변 환경과 상황 파악을 하는 과정에서

나의 견해나 입장을 먼저 세우게 되면

상황에 대한 이해나 판단이 나의 선입견으로 인해 왜곡되게 되고,

이로 인해 상대와 나 사이의 견해차, 갈등이 일어나게 됨.

 

따라서 대화나 토론의 과정에서

나의 주의, 주장을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함.

 

대화나 토론의 목적은 나 자신의 우월함, 똑똑함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고,

상대나 청중의 문제나 어려움을 경청하고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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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 | 박지온 | 작가와- 교보ebook sam

비전이 있을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책소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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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이든 조직의 일이든 성과를 내고 몰입해서 일할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비운 곳에 비로소 자신의 가치와 비전을 심고 그것을 위해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미래를 위해 과거를 포기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 합니다.

이미 지나간 것은 놓아버리고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꿈꾸면 되는 일인데 말입니다.

 

아래는 그에 대한 내용을 '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에서 인용해 보았습니다.


 

조직의 리더로서 다양한 이해관계에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오히려 나 자신을 위한 삶은 사라지고 조직을 위해 행해야 할 역할들만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연속되고 나 자신의 삶에 대한 감수성과 열의가 줄어들 때, 보다 큰 틀에서 나의 삶의 가치와 비전에 대해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머리와 가슴속에 조직의 일만이 존재하고 나 자신의 감성과 비전을 넣을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커다란 불행입니다. 집안에 물건을 쌓아놓기만 하고 버리지 않아서 내가 쉴만한 공간조차 사라져 버린 집은 더 이상 쓸모가 없듯이 해야 할 역할만 존재하고, 나 자신만의 소중한 비전을 위한 공간을 가슴속에 따로 마련해놓지 않는다면 그 리더의 삶은 외로움과 소외감으로 막을 내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소중한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 친구를 초대하고 소개시켜줄 수는 있을지언정 거기에 머무르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서른 개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을 이루는데

그 비어있음 때문에

수레의 쓸모가 있게 된다.

찰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 있음으로 인해

그릇의 쓸모가 있게 된다.

문과 창문을 뚫어 방이 만들어지는데

빈 공간이 있기에 방의 쓸모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있음의 이로움은

없음의 쓸모에서 나온다.

 

- 출처: 도덕경 11장, 저자 해석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고, 모든 세상을 아우르는 가장 큰 그릇도 나 자신의 마음입니다. 리더는 스스로 가치와 비전을 새롭게 가다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부 업무들을 재조정함으로써 자신의 뚜렷한 비전을 중심으로 모든 일의 흐름을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가치와 비전이라는 명확한 등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의 우선순위도 보이지 않을 것이고 동기부여도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가치와 비전이 명확하면 비로소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힘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일의 절반이고,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나는 온갖 갈등과 이해충돌을 조정하는 것이 리더에게 남은 나머지 일입니다. 앞의 일은 가치와 비전으로 표현되며, 나머지 일은 마음챙김으로 표현됩니다. 내가 속한 직장, 가정, 나 자신의 삶조차도 이러한 과정의 반복입니다. 따라서 뛰어난 리더는 자신의 가정과 자신 개인의 삶도 안정적이고 조화롭게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이끌어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삶은 번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에 깊이 마음챙김하는 수행자는 오히려 조직도 가정도 버리는 외로운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은 독자분들이 모두 조직과 가정, 나 자신의 비전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도덕경 무용지용 해설, 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 중

 


 

- 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 중, 박지온 저

 

 

비움은 비움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채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의미있음을 한번 더 강조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qzD1-Jv4_k

 

여왕벌 게임의 최근 영상입니다. 이 영상이 주는 교훈은

'잘해야 살아남는게 아니고, 살아남아야 잘하는 것이다.' 요렇게 요약하고 싶네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과정과 가치의 중요성이지만,

실제 사회에서 경험하는 것들은 결과와 경쟁에서의 생존입니다.

 

내가 아무리 적절한 과정과 깊은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그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나의 노력은 사회적 의미를 가지기 어려운 반면

과정에서 문제가 있더라도 결국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나는 경쟁에서 얻을 수 있는 우위와 과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며, 현실이 그러합니다.

기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풍자하여 세계적 호평을 받았지요.

 

소설가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은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과거를 통제하는 자가 미래를 통제한다. 현재를 통제하는 자가 과거를 통제한다.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 소설 1984, 3장 중

 

나폴레옹 역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역사란 결국 합의된 우화에 불과하다.

"What is history but a fable agreed upon?"

역사가 E.H. 카(E. H. Carr) 역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습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History i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 역사란 무엇인가 중

 

 

결국 역사의 해석은 권력과 헤게모니를 쥔 이들의 당위성과 우월성을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시의 권력자들로 부터 핍박받고, 주류로 부터 소외당하는 삶을 살아나가게 될 것입니다.

 

반면 헤게모니를 쥐는데 실패하고 약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사회체계에 반발하고 절망해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과정과 노력이 선량하고, 주변에 귀감이 되고, 절실한 노력을 기울였다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마음챙김하는 수행자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바른 수행을 배우지 못한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외부에 비춰지는 나 자신의 모든 세상을 구성합니다.

반면 바른 수행을 배운 이에게는 나에게 비춰지는 나 자신이라는 세상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평온을 찾고 자신의 가치를 찾습니다.

아래는 애니메이션 쿵푸팬더의 한 장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TpxxnNf4F8

 

후반부에 보시면 비급이 적혀있는 용문서를 본 타이렁과 포의 해석이 전혀 다릅니다.

내 바깥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본 타이렁은

아무 내용없이 텅빈 용문서를 보고 실망하는 반면

용문서가 나 자신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에서

포는 나 자신의 독창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무한한 힘의 비밀은 없었어!

자기 자신 뿐

---

그래 난 뚱보 팬더야,

그런데 난 짱뚱보 팬더야!'

 

이라고 타이렁에게 일침을 주지요!

 

이 내용은 부처님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남긴 '자등명, 법등명' 말씀과 일맥 상통합니다.

 

'자신에 의지하고(自燈明), 자신이 찾은 진리에 의지하라(法燈明).'

- 대반열반경 중 -

 

 

(이미지 출처 : 혁신적 사고의 비밀, 박지온 중)

 

 

[이 때 나 자신이 찾은 진리는 당연히 부처님께서 설하신 사성제법(5온,12처,18계,12연기,4성제)에 일치시켜야 할 것입니다.

나 자신에게서 찾은 진리를 부처님의 깨달음인 사성제법에 맞추어 검증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의 깨달음이 잘못되었을수도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오해가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그 둘을 서로 비교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 자신의 깨달음이 현실에서 검증되면서 점차 불순물이 걸러지고 정연해지게 됩니다.

 

미묘하게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수행한다는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사족이 길어졌네요.

실제로 이부분 때문에 아직까지도 초기불교를 수행하는 분들과 대승불교를 수행하는 분들 사이에는

배움의 내용에 큰 괴리가 존재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현실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실 사회는 소위 승자독식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경쟁에서 실패하거나 도태된다고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에게 진정으로 가치있는 세상은 내 안에 있고,

내가 그 세상을 향해 어떻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바깥에 나 자신은 모르는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거라는 상정을 깨트리고

나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 내 삶의 결실은 보다 의미있게 드러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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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리더의 마음챙김 | 박지온 | 작가와- 교보ebook sam

비전이 있을 때 비로소 삶이 시작된다<책소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나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등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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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 일론 머스크의 비전과 목표 달성

일론 머스크는 기술과 비즈니스 혁신을 통해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인물입니다. 기존에 이처럼 과학과 비즈니스 두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혁신을 이룬 인물로 에디슨과 테슬라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와 달리 지금은 프로그래밍과 인터넷이라는 혁신적인 기술 덕분에 한 사람이 혼자서 더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기술적 혁신을 바탕으로 기존 인물들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성과와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인터넷 결제, 우주항공 산업, 전기자동차,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 생체인식 등 각 미래를 이끌어갈 첨단 핵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가 어떻게 이처럼 대단한 업적들을 이루어낼 수 있었을까요? 일론 머스크는 어릴 때 매우 극단적인 아버지한테서 영향을 받고 자라났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학창시절 학교 폭력으로 인해 코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 적부터 자폐증의 일종인 야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문제들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 국가의 대통령보다도 더 큰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가 이처럼 대단한 인물로 성장하게 된 이유에 대해 유튜브에 소개된 한 영상을 바탕으로 내용을 다음과 같이 풀어보았습니다. 일론머스크의 사고법은 현대의 개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참고해야할 많은 중요한 부분들을 담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 일론 머스크 사고법 분석)
https://www.youtube.com/watch?v=wr0GdG5mgH0&t=3s

 

 



      a. 비전의 시각화

일론 머스크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선명하게 시각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시각화된 미래 비전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래는 일론 머스크가 작성한 화성을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미래 계획표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화성을 인간들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탈바꿈할건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화성의 지구화Terraforming 조감도)
https://namu.wiki/w/%ED%85%8C%EB%9D%BC%ED%8F%AC%EB%B0%8D

 

테라포밍

테라포밍(Terraforming) 은 우주 개척 중 지구 외 다른 천체 에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를 인위적으

namu.wiki

 

 



이러한 정교한 시각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예측을 자주 시도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일의 최종적인 비전과 목표를 설명하는 과정도 도움이 됩니다. 


      b. 단계별 목표 설정

큰 목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단계를 세분화해서 한 단계씩 나아가야 합니다. 수치적인 목표는 비전에 가까워지는 과정일 뿐임을 알고 현재의 단계에 안주하지 않을 때, 동기부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페이팔을 매각했을 당시 이미 수천억 자산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비전을 위한 하나의 단계로 인식했기 때문에 테슬라, 스페이스X와 같은 엄청난 회사들을 창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초기 제품 생산에 많은 난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Tesla의 Roadster, SpaceX의 Falcon1 로켓 등의 초기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또한 초기 제품의 성공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즉 Tesla의 Model S, 3, X, Y, SpaceX의 Falcon 9, Starship 등으로 제품 라인을 지속적으로 확장했습니다. 또한 웹상에 공개되어 있는 일론 머스크의 회사별 관계도를 확인해보면 각각의 회사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는 해외 원문 자료를 한글로 직접 번역한 자료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큰 그림 속 회사들의 관계도)
https://bootcamp.uxdesign.cc/the-power-of-synergy-how-elon-musks-companies-collaborate-to-achieve-common-goals-f6d22a0b93c7

 

 



      c. 집중과 몰입

그는 핵심이 되는 한 가지에 극도로 몰입하고 나머지 것들에 의식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중요한 것에 집중하여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성과를 냈습니다. 즉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셀디자인 변경, 제조 공정효율화, 원료의 효율화, 차량구조의 변경 등을 통해 원하는 목표로 다가갔으며, 스페이스X의 경우 위성 자세제어, 수직 이착륙 등의 기술개발을 통해 우주선의 1단 발사체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 비용을 절감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5.1 몰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구조변경을 통한 전기차 배터리 비용절감)
https://www.youtube.com/watch?v=q4vX9LvN97g

 

 



      d. 올바른 질문 던지기(문제의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문제의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일론머스크나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은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데 집중하였습니다. 질문 자체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비전과 관련된 구체적인 문제들을 정의했습니다. 예를 들어, 스타링크를 탄생시킨 질문은 ‘언제 어디서든 가능한 고속인터넷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였고 스페이스X의 획기적인 비용절감은 ‘어떻게 하면 한번 발사하면 버려지는 발사구조체를 재활용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러한 명확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만의 세밀한 비전을 그려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비전을 성취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을 통해 문제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가 해결된 상태인 명확한 비전을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페이스X의 로켓 착륙 모습)
https://www.youtube.com/watch?v=GrP3jHuLQ9o

 

 



      e. 제1원칙 사고법

이는 ‘5.5 본질을 파고드는 통찰력’에서 이미 다루었던 내용입니다. 이는 물리학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근본적인 원인 혹은 더 이상 나눠지지 않는 본질까지 분해하여 그 분해된 본질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즉 일론 머스크는 문제를 발견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살피는 ‘왜?’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았으며, 그 원인을 살피는 과정에서 제1원칙 사고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전기차 시장이 태동하기 위한 주요한 문제였던 배터리의 비용 절감, 우주발사 시스템의 고비용에 대한 대안으로 로켓의 재활용 등을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대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학문을 융합하여 응용하는 한편 뛰어난 인재들을 영입하였습니다. 제1원칙 사고법은 본질적인 사고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사업들 간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도 사업간 시너지와 성장을 이끌어 냈습니다. 예를 들어, 테슬라의 전기차 기술과 솔라시티의 태양 에너지 기술을 결합해 가정용 에너지 솔루션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해 하이퍼루프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보링컴퍼니를 설립해 지하 터널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과 같은 사업의 확장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일론 머스크는 '비전의 시각화', '단계별 목표 설정', '집중과 몰입', '올바른 질문 던지기', '제1원칙 사고법' 등의 솔루션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하나씩 현실화해 나갔습니다.

 

 

 

- 혁신적 사고의 비밀 중 발췌 -

 

https://millie.page.link/CYnLE

 

혁신적 사고의 비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성향과 생존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하지만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학업에 임할 때이러한 욕구에 휘둘리리거나 자신만의 사고에 매몰되

www.millie.co.kr

 

 

https://www.youtube.com/watch?v=WjT39n4LowU

 

https://www.youtube.com/watch?v=7snj87PMxeQ

 

너무나 경축할만한 일이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작가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들을 유튜브로 들었습니다.

국가의 폭력을 인간관계의 폭력에 비유해서 써 놓은 책들이라 박근혜정부때 금서(블랙리스트)조치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소설의 일부 문구들을 들으면서 느낀 느낌은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온전함에 대한 갈구와

자신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는 폭력조차 허용되는 잔인한 사회의 모습을 대치시켜 보여주면서

개개인에게 각인되는 고통과 심리적 트라우마를 탁월하게 묘사해낸 소설로 보여집니다.

저는 이 내용에 대해 수행적 측면에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른 법을 배운 수행자 역시 이러한 사회의 모순을 보면서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사회의 모순을 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2개의 부류로 나누어 집니다.

첫째는 사회운동가나 정치인들로서 사회의 모순에 부딪히게 될 때

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사회환경의 문제를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반면 수행자나 철학자는 내 안의 자기모순을 바라보고 그것을 일깨우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자기안의 모순과 인간의 본질을 깨우치고 그것을 가르치면 사회 전반의 변화가 올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올바름을 깨우쳤다 하더라도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강요한다면 그것이 다시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깨우쳤듯이 남들에게도 알려주면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배우고 익힐 수 있다고 확신할 뿐입니다.

 

수행을 통해 자기성찰을 한다고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경험을 하지 않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단지 계속 멍한 상태만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현실의 경험이 있고 그로 부터 자신의 감정과 견해들이 생겨날 때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살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게 바라보게 되면 현실문제들와의 경험으로 부터 자신의 자기합리화나 감각적 욕망의 문제들이 드러납니다.

 

수행자의 삶을 살아갈 때 드러나게 되는 자신의 자기합리화나 감각적 욕망의 문제는

불교 수행법에서 오계(5가지 장애)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오계란

➀감각적 욕망(kāmāchanda), ➁적의(vyāpāda), ➂해태와 혼침(thīna-middha), ④들뜸과 후회(uddhacca-kukucca), ⑤회의적 의심(vicikichā) 을 말합니다.

 

즉 수행을 하지 않았을 때는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사회와 타인에 대한 비난과 혐오로 인해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들에 대해 어떠한 의도들이 깔려있는지를 스스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의 바라봄은 편견이 없이 느낌 그대로를 바라보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치우친 감정이 아닌, 한걸음 뒤에서 객관적으로 살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 때 자신의 견해에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현실과 각자의 입장을 있는그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있는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은 감정을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좋으면 왜 좋고, 싫으면 왜 싫다는 것을 알아서 각자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살핌이 있는 사람은 사회가 혹은 상대가 나에게 싫은 것을 강요한다면

나는 그것이 왜 싫은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어리석은 생각이 나에게 싫은 것을 강요한다면

나는 그것이 왜 싫은지를 나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타인에게 나의 견해를 설명하고 어떤 행동을 촉구한다면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는 과거의 경험과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물과 일을 바라볼 수 있고

서로를 납득시키기위해서는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그 입장에 맞춰 설명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설명하지 못하면서 행동을 요구하면 강요가 되는 것이고, 강요는 서로에게 감정적 앙금과 상처를 남깁니다.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채식은 탐욕과 폭력에 대한 순수정신의 저항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수정신이라는 것이 곧 주변의 현실 조건을 살피는 알아차림이 없는 상태라면

이 역시 새로운 형태의 관념적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는 이를 상견이라고 합니다.

나 자신의 영혼의 절대성, 완벽성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그러한 것은 실체하지 않으며 단지 조건지어 생겨나고 조건지어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절대적 영혼(개아, 푸드갈라, 아트만)은 없다고 해서 '무아'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건의 살핌을 통해 절대적 자아가 있다거나(상견)과 절대적 자아가 없다(단견)는 관념을 깨트리면

그것을 '중도연기의 지혜'라고 설하셨습니다.

 

'중도연기의 지혜'에 완벽한 나라는 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이든 타인이든 인간 본연의 절대적 순수성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바른 사유를 통해 바른 행동을 하면 올바른 나가 되는 것이고,

내가 그릇된 사유를 통해 그릇된 행동을 하면 그릇된 나가 되는 것입니다.

 

왜 완벽한 나를 상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할까요?

완벽한 나를 상정하게 되면 나의 불완전성이 드러났을 때 자신을 혐오하게 되고

타인의 불완전성이 드러났을 때 타인을 혐오하게 됩니다.

나 혹은 타인의 불완전성은 사유와 경험의 부족함 때문일 뿐이며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갖추게 되면 보다 나아지는 것일 뿐입니다.

부족한 것을 더 나은 사람으로 부터 배우고 익히면 개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으로 완전한 행위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환경마다 시기마다 적절한 행위는 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나 혹은 절대적인 경지의 타인을 상정하지 말고

단지 자신과 주변에 대한 살핌과 대화를 통해

자신과 주변에 이로움을 가져다주는 행위를 그때 그때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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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반야심경 해설서 - 예스24

수행은 홀로 가는 길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삶에 대한 길이고, 스스로 밝혀야 할 길입니다.특히 부처님 가르침은 나 자신의 내면을 있는그대로 보는 법에 대한 가르침입니다.반야심경은 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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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자왈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즈음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명확한 비전을 확립하였으며,

마흔 살에 마음이 명료해졌으며,

쉰 살에 마음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예순 살에 타인의 뜻을 배려할 수 있게 되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르지만 해로움이 없게 되었다.

 

- 논어 위정편 4장, 혁신적 사고의 비밀 중

 

 

이는 공자께서 추구하는 학문이 개인의 삶에 대한 완전한 깨달음을 논한 내용이라는 가정아래에서의 해석입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추구하는 학문이 세상의 흐름과 나의 비전의 조화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아래와 같이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즈음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서른 살에는 학문을 세상에 어떻게 써야 할지 비전을 세웠으며

마흔 살에는 그 비전이 명료해졌으며

쉰 살에는 그 비전을 실천하기 위한 토대인 세상을 비전으로 왜곡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보게 되었으며

예순 살에는 세상의 흐름이 나의 비전과 달라도 화내지 않게 되었으며

일흔 살에는 나의 비전을 행하는 것이 세상의 흐름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공자의 삶의 행적을 봤을 때는 후자의 해석이 공자의 비전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 자신과 개인의 완전한 깨달음보다는

치세를 통한 아름답고 조화로운 세상을 구현하는데 더 집중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은 올바른 교육과 예의범절을 가르침으로써 충분히 선해질 수 있기 때문에

군주나 위정자가 올바르게 세상을 다스리고 모범을 보인다면

세상의 온갖 문제와 모순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그는 인, 의, 예, 지의 도덕정치를 통한 치세를 주장하며

각국의 군주들에게 인본주의 정치를 설득하고 다녔지만,

힘과 권력을 더 중시하는 군주들의 반발로 실패하면서 교육자로의 삶으로 전환하였습니다.

 

 

참고자료 : 혁신적 사고의 비밀, 공자/생애 및 사상

https://millie.page.link/CYnLE

 

혁신적 사고의 비밀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인 성향과 생존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하지만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학업에 임할 때이러한 욕구에 휘둘리리거나 자신만의 사고에 매몰되

www.millie.co.kr

 

https://namu.wiki/w/%EA%B3%B5%EC%9E%90/%EC%83%9D%EC%95%A0%20%EB%B0%8F%20%EC%82%AC%EC%83%81

 

공자/생애 및 사상

파일:IMG_20190523_224624_573.jpg 여주 향교에 모셔져 있던 공자 초상 조상 기록에 따르면 물론

namu.wiki

 

저는 윤회와 사후세계를 믿지 않지만, 개인의 꿈, 희망, 비전은 삶에 절대적으로 작용한다고 믿는 입장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부활이란

깊은 깨달음의 계기로 나 자신과 나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변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즉 성경의 표현을 나 자신의 비전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를 현실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종교적으로 세뇌되거나, 영생에 대한 욕심에 매달리게 되면

결국  스스로에게 속아넘어가서 다음 생의 삶을 꿈꾸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사후의 삶에 대한 혹은 영생에 대한 욕망이 없다면 일단은 그러한 것이 진실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살피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할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 집에 황금송아지 있다고 외친들 그것을 보지 않는 한 누가 그것을 믿어주나요?

 

이는 사기꾼이 아무리 나를 꼬득여도 사실여부를 검증하는 태도만 가지고 있다면

그 사기에 걸려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나에게 다음 생에 대한 삶의 희망이 있기에 사후세계와 영혼의 존재에 대한 종교적 믿음을 놓아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기타 무속신앙 등 모든 종교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즉 세속적인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저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아래의 내용에 대해 들어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live/qr4uvNKeB6w

 

 

강의가 시원시원합니다.

 

* 전한길 = 공무원시험 한국사 일타강사.

* 세계로 교회 = 부산에 위치한 고신(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교회

 

아래는 위 강연을 끝까지 듣고 개인적인 소감을 적은 내용입니다.

 

청춘이란 곧 '미래에 대한 기대, 희망, 비전'이며 그래서 청춘은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즉 나이가 들어도 비전을 잃지 않는다면 그는 청춘이지만,

아직 어리지만 아무런 비전이 없다면 그는 곧 늙음과 죽음 앞에 있는 것입니다.

 

기도라는 것은 나의 욕심을 이루게 해달라고 저 세상의 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내 내면의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내 안의 하나님의 목소리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지 바깥의 말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남들의 말에 불과합니다.

내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하고, 남들의 말에, 저 세상의 신(우상)의 말에 꼬득여 나가면

그 때부터 괴로움이 시작되고, 지옥(내면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내면의 목소리는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모든 상황을 꿰뚫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깥 세상의 권위에 눌려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놓치니 당연히 괴로움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이란 내 안에 존재하는 지혜로운 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내 안의 내면의 목소리가 아닌 외부에 존재한다고 상상한다면 그것이 곧 우상입니다.

 

내 안의 내면에는 지혜로운 자(선善)의 목소리, 어리석은 자(악不善)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 때 지혜로운 자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나와 주변에 사랑을 주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남과 비교하고 분노하고 불만족하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내안의 하나님을 발견한 나 자신 = 유일함 = 하나님 = 무한의 가치"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순간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일도 없어지지만, 이와 동시에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하나님이 있음을 알기에 누구든 나처럼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루가의 복음서 10 25~37


 

 

강연의 세 번째 내용(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간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잘못 이해하면 곧 하나님(내 안의 목소리)에 대한 간증이 오히려 우상(나 밖에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신)에 대한 간증으로 변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기대, 희망, 비전은 눈에 보이는 존재인가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나에게는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비전이 마음에 깊이 찍히면 그 밝은 빛으로 인해 세상의 온갖 티끌(나의 비전을 방해하는 요소들)에 대해서는 눈이 멀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은 결국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비전을 가리게 하고, 물욕의 삶과 현실에 눈을 뜨라 하는 나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 그것이 곧 사탄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께서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 주야를 단식하시고 나서 몹시 시장하셨을 때에 유혹 하는 자가 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성서에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 하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악마는 예수를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 보시오. 성서에, '하느님이 천사들을 시켜 너를 시중들게 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지 않았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도 성서에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악마는 다시 아주 높은 산으로 예수를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며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성서에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시지 않았느냐?" 하고 대답하셨다. 마침내 악마는 물러가고 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들었다.


마태오의 복음서 4 1-11, 공동번역성서

 


 

"나는 천국을 보았다." 책소개 관련하여서는 kbs에서도 관련 내용을 방영하였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일군 이래로 가장 핵심 이슈는 사후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괴로움의 근원에는 삶의 유한성이라는 문제가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사후 세계를 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천국과 지옥, 죽음 이후 세상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여부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세상이 존재한다면 그 세상에서 육체없이 존재하는 영혼이 또한 존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0tV7SkD95s

 

 

따라서 사후세계의 존재 유무는 이미 기독교 뿐만 아니라 불교나 무속신앙, 기타 종교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얘기입니다. 원시부족 시대부터 사후 세계를 위한 무덤, 제사 등이 있어왔으며, 오히려 원시시대에는 부족장보다 제사장의 지위가 더 높았음은 이미 역사책에 다 기록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어떤 종교이든 사후세계인 천국과 지옥의 존재 여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사후세계는 곧 부정되는 것이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믿어온 종교인들에게는 삶 전체가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지는 충격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실의 걱정과 근심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종교적 믿음을 통해 사후세계에 대한 보상을 기대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종교는 지금 여기의 평안을 얻는 것이지, 지금 여기에서의 희생을 통해 저 세상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래는 중세 로마가톨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 내용입니다. 이러한 종교의 상품화는 모든 종교를 막론하고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음 생을 걸지 않는 종교는 그 대중성, 상품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https://pasteve.com/christianity-comparison/indulgence/

 

면죄부 - 면죄부는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의 획기적인 기획상품!!

면죄부 - 면죄부는 중세시대 로마가톨릭의 획기적인 기획상품!! │ 중세시대 가톨릭교인들은 돈이 많이 필요했을 듯싶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교회에서 발행하는 어

pasteve.com

 

 

 

그러나 과학계에서는 이미 임사체험이란 과다한 호르몬 방출로 인해 일어나는 환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사후 체험은 몸이 완전히 죽은 후 영혼이 나 자신의 몸을 유체이탈하여 세상을 경험하는 것인데 그 몸을 바라보는 영혼의 눈은 어디에 있을까요? 만약 그러한 눈이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몸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 내용을 조금만 고민해본다면 사후 체험이라는 것이 사실은 임사체험이며 임사체험은 곧 아직 완전히 죽지 않은 두뇌의 착각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_9dE_ZsiMs8

 

 

저의 주장은 위 내용에서 보시다시피 사후세계를 믿는 기존 전통적 종교관과는 전혀 맥락을 달리합니다.

그렇다고 유물론자도 아닙니다. 비전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후세계가 존재하기를 믿고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러한 세계가 없다면 어떡할건지에 대해 한번씩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먼 미래를 기약하지 말고, 당장 지금 여기에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나가는 행복한 삶을 꿈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후세계(그것이 존재한다면)의 행복과 지금 여기의 행복을 비교해보는 것은

나 자신의 소중함을 알고 나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씩 생각해 봐야할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나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나 자신의 목소리이지,

신(그것이 존재한다면)이든 인간이든 외부의 목소리가 아님을 명심해야 '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 현재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요?
우리가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동일성을 가진 나가 있어야 성립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신분상으로는 주민등록증이라거나 지문, 유전자, 집주소, 폰번호, 가족관계 등 나를 특정지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삶을 살아갈 때 나라고,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겉으로 드러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늘상 변하는 사회적 관계, 이 몸과 그리고 마음 가운데서 변치않는 나만의 그 무엇을 우리는 정체성이라고 하는거잖아요.

그렇지만 우리는 그 정체성을 특정할 수가 없습니다.
특정할 수 있는 사람 있나요?
남들에게 보이는 나가 아닌, 내가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특정할 수 있는 나를 찾을 수 있는지요?
왜냐하면 그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나는 지금은 없습니다.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금 여기 현재의 나는 계속 과거로 사라져 갑니다.
시시각각 몸도 마음도 변하고, 사회적 관계는 더더욱이나 심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나를 있는그대로 바라봐줄 사람은 남이 아닌 나 뿐입니다.
굳이 변함없는 나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미래의 꿈(비전)으로서의 나일 것입니다.
미래의 꿈을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나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치 저 북극성이 지금 나의 위치는 아니지만, 내가 가는 길의 나침반이 되어줄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비전은 나에게 삶의 동기를 제공하고, 나의 과거와 미래, 현재를 잇는 정체성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가 아니라는 비전의 특성으로 인해
현재의 나와 미래의 비전은 항상 갭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삶의 에너지이자, 동기가 될 수 있는 반면
불만족이자, 나를 혹사시키는 원인이 될수도 있습니다.
지금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미래 비전과 별개로 지금 여기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지금 여기의 나는 텅비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석가는 공 혹은 무아라 말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비전을 추구하지 않았기에 세상일에서는 한가했고
그러했기에 현실의 허망함과 모순을 있는그대로 깨달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도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미래에 마음을 두고 있다면
절대로 지금 여기의 텅빔, 공허함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설사 문득 문득 들어서는 그 생각 역시 오히려 삶에 대한 안이함, 게으름으로 여기며
생각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이상을 추구하는 우리들 범부의 삶입니다.
어느날 문득 나라고 상정하던 자기만의 정체성이 깨어지는 현실을 마주하면
그것을 진리로 알아보지 못하고 단지 엄청난 괴로움과 자기모순에 부딪힐 뿐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 속에서 변하지 않는 나를 찾아헤매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착각입니다.
그것이 과거의 나이든, 미래의 나이든, 현재의 나이든 말입니다.
그나마 현실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미래의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이 사회적으로는 칭송받을지라도
지금 나의 불만족, 불안함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이를 지혜로운 이들은 다람쥐 챗바퀴 도는 삶, 즉 윤회라고 말합니다.
다음 생, 저 세상이 있어서 윤회라고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다람쥐가 챗바퀴도는 것을 어리석다고 알수는 있어도
자기 스스로의 챗바퀴같은 삶을 알아차리기는 참 힘든 것이지요.

그렇다면 미래에 의지하지 않고 텅빈 현실에 마주칠 때 다시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처럼 사유하는 지혜입니다.
나 자신은 그 무엇도 아니지만, 과거의 나, 미래의 나, 지금의 나 모두를 하나하나 사유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텅 비어있음을 있는 그대로 앎에서 나오는 그 무엇에도 묶이지 않는 지혜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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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반야심경 해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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